서로 사랑하라
가룟 유다의 배신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직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 칭하심으로 곧 닥칠 죽음을 통해 자신이 영광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걸어가실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며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근데 이 계명은 완전히 새로운 계명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도 이미 언급된 내용이었습니다.(레 19:18)
다만 여기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고자 나가는 가룟 유다조차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개입되어야 새 계명이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신 사랑은 우리를 위한 희생의 사랑이었고, 죽음으로 보여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먼저 섬기셨고, 용서받으려 하지 않고 먼저 용서하신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뭔가와는 다른, 세상과는 다른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것도 같은 사랑의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어떤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도 여전히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컸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자신이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의 부인을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성도와 참된 제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예배에 성실히 참여하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참된 성도와 제자의 척도일까요?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쉬울지도 모릅니다. 좀 마음에 안 들고 미운 사람이 있어도, 교회 생활만이라도 열심히 하면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성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의 정체성은 교회 일이나 사역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이나 일보다도 사랑을 참된 제자의 기준으로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죄투성이인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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