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에도 기뻐하는 이유
욥기 6-7장은 엘리바스가 4-5장에서 욥을 정죄하는 것에 대한 욥의 반론이자 하소연을 하고 있는 장입니다.
지금까지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했던 내용을 요약한 말씀을 보면,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4:7-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5:8)
엘리바스가 욥을 행해 갖고 있었던 잣대는 “내가 보건대...”와 “나라면...”입니다. 하나님을 반복해서 운운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의 생각이었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인과응보와 자업자득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욥이 뭔가를 잘못했으니 이렇게 되었겠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고난의 원인이 죄 때문이기도 했지만, 욥이 겪는 고난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엘리바스의 책망에 대한 욥의 반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너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의 무게가 바다의 모래보다 무겁고, 그래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욥은 반론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욥이 죽음과 고통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거룩하신 자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10절) 욥은 고난 중이지만 위로를 받고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 후의 세계 곧, 내세에 있을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엘리바스처럼 “내가” 혹은 “나라면” 이라는 마음이 앞서게 되면 뭔가 잘못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실수가 많습니다. 그래도 참고 목사를 봐주시고 기도해 주시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또 엎드려 기도하며, “내가, 나라면”이 아닌 “우리가”를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이런 모습은 그냥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마음과 말씀에 순종하려는 태도가 되어질 때에, 겨우 나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말씀과 기도로 더욱 다져가며, 다른 지체들을 말로만으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위로하는 귀한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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